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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0년10월28일 21시35분 ]
 
 

능파(陵波) 강 일 영

기술사(건축시공, 건설안전, 산업안전)

 

우리는 우루무치를 출발하여 쿠차로 향하였다. 우루무치 외곽의 포장도로를 벗어나면 끝도 없이 황량한 비포장 도로가 계속되었다. 2009년 여행 시에는 곳곳에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길이 끊어지고, 또는 우회하고 가이드도 길을 찾기 곤란할 정도로 도로 사정이 열악했다.

 

쿠차는 인도, 페르시아 제국, 박트리아와 중국 등 실크로드 교역국들의 갈림길이었다. 7세기 중엽 쿠차 동쪽의 당나라는 둔황지역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였지만 얼마 안가 토번에 의해 안서도호부는 점령당하고 쿠차는 토번의 영토가 된다.

 

실크로드는 동아시아와 西아시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 온 동서교통로를 총칭하고 있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섭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이다.

 

쿠차(龜玆)는 천산산맥 중부의 고봉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에 의해 오아시스를 이루고 있다. 기원전 2세기 말에 이미 구자라고 명명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땅이다. 당시 주민은 아리아계로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쿠차어를 사용했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1833~1905)19세기 후반, 중국의 각지를 답사한 후 1877년 대작 차이나를 저술하고부터이다. 이 책에서 동서교통로의 역사, 고대 동아시아권과 그리스·로마 문화권과의 교섭에 가장 큰 역할이 비단이었다고 했고, 이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무역이 불가능해졌다. 쿠차는 실크로드에서 서역북도(西域北道)의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신라의 고승 혜초도 이곳을 지나면서 기록을 남겼다.

 

불교1세기말 쿠차에 전래되었다. 중국의 진서에 따르면 3세기에 쿠차에는 수천개의 불탑과 사원이 있었다. 이때에 쿠차 승려들은 중국으로 여행하기 시작하였다. 4세기에는 불교가 왕국에 더욱 성장하였다. 왕국은 불교도의 수도원을 닮아갔다고 하는데 부처의 석상이 있었고 도시 주변에는 수도원이 많았다. 신라승 혜초는 당나라 때 이곳을 지나가며 왕오천축국전에서 쿠차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한서에 따르면 쿠차는 현재 위구르 자치구의 지역에 존재하며 인구가 81,317 명이며 21,076 명이 무기를 지닐 수가 있었다. 쿠차는 인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7세기 중엽 쿠차 동쪽에 당나라는 둔황지역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주변 풍경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메마르고 황량한 돌산이 계속되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大王은 이 길을 따라 印度 북부지방까지 원정했다.

 

 

 

인도유럽어족의 일종인 토하라어파를 사용하는 토하라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돌궐의 휘하에 들어간 후에는 점차 튀르크화 되었다.

 

현재의 쿠차 거리는 1957년 키지르강의 대홍수로 옛 시가가 괴멸했기 때문에 동쪽 고지대에 건설된 신시가가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새로 지은 쿠차빈관은 국도 연도의 신·구시가의 중간에 있어, 구시가에 있는 쿠차 대모스크, 청대의 고차 성벽, 그 안에 있는 쿠차박물관 등에는 걸어갈 수 있다.

 

현재 쿠차는 지구 중심의 지위를 인근 아쿠스에 넘기고 조촐한 시골거리의 풍정이다. 그러나 쿠차에는 유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신시가 사이에 활기 넘치는 바자르(시장)2km 쯤 이어져 있다.

 

 

쿠차 시내의 관광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여흥을 즐겼다. 주 메뉴로는 현지 위루르 인들의 주된 식사 재료인 양고기 통구이가 식탁에 등장하였다. 양 머리에는 붉은 천으로 꽃장식을 한 상태에서 등에 해체용 칼이 꽂아진 상태로 등장하여 이국적인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식당의 위구르족 종업원 얼굴 모습이 한족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필자는 식사 중 대표로 불려나가서 위구르 전통 옷을 입어보는 주빈의 영광을 갖게 되었다. 잘 구워진 양고기 한마리를 해체하는 의식을 치루기 위해서란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나 이런 분위기에서 어찌 거절할 수야 있을까 싶어 이곳 전통 술도 한잔 마시게 된다.

 


관광객으로서 양고기를 직접 해체해보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여행의 맛을 새삼 느껴본다. 이어서 이색적인 저녁식사가 시작되면서 아릿다운 무희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사위를 선보이며 한층 분위기를 띠운다.

 

젊은 부인들은 얇은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외출하지만, 대부분의 남녀노소는 형형색색의 문양을 수놓은 사각모자를 쓰고 있다. 이 사각모자의 착용이야말로 위구르인의 아이덴티티(正體性)를 지키려는 몸짓인 것처럼 보인다.

 

 

쿠차 음악(쿠차악)은 당왕조에 매우 유행하였다. 특히 현악기인 류트는 중국의 비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장도 '대당서역기'에서도 이곳의 관현악 수준이 높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당현종도 쿠차의 타악기인 갈고의 명수였고, 쿠차의 악기는 고구려와 신라에도 전래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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