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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0년08월29일 15시34분 ]
 [한국시민뉴스] 문장수 기자 =


    
 
전문기술경영인 정춘병 박사                    ㈜화신엔지니어링 회사 전경
 (주)화신엔지니어링 CTO


인덕원역을 지나 안양천변의 관양동 두산벤처다임 3층의 ㈜화신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에서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정춘병 박사를 만나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몇 가지 궁금햇던 이야기를 듣는다.

잠시 환담하는 동안 그는 한평생 전기공학분야에 몸담은 사람으로 내공이 쌓인 전문 기술경영인으로 그간의 이력들을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그의 행동반경과 인맥의 범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 먼저 ㈜화신엔지니어링은 어떤 회사인지요?
▶ 기술연구소장(CTO) 입장에서 보면, 단단하고 소신 있는 종합엔지니어링 회사로 설립한지 28년 되었으며, 인원은 250명이고, 매출은 350억 정도 되는 강원도 1위 업체인 실속 있는 기업입니다. 처음에는 설계 용역업을 중심 사업으로 시작했고, 그간 공공측량업, 감리전문업, 환경영향평가업 등을 수행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안전 진단, 건설사업관리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업계 최초로 정보화 경영체제(IMS)를 도입해 고객에게 신속하고 완벽하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의 중심인 에너지절약과 신·재생에너지분야 효율향상 분야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 종합엔지니어링사로 지난해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인증 패를 받은 바 있습니다.

■ 그간 전문기술인으로 전문성과 사회활동상을 말씀해주시죠
▶ 네, 전문기술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건축전기설비기술사, 전기응용기술사, 건설사업관리전문가(CMP), 가치공학전문가(KCVS), 기술사업평가사(TCA) 등 자격을 취득했지요. 이러한 결과 국방부, 국토해양부 등의 정부기관과 경기도 등 각 지자체, 한국건설기술진흥원 등의 20여 곳이 넘는 굵직한 공공기관에서 자문위원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또한, 한국조명설비학회, 한국건설안전학회, 한국건축정책학회, 한국기술사회 부회장 등으로 학회에서도 활약하였으며, 한국전기기술인협회에서는 임원으로, 또 한국전기설계협의회에서는 의장을 역임하였지요.

현재 전기전자기술인회 회장, 대한상사중재인협회 부협회장, 한국방재안전학회 부회장, 한국기술사회 한림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활동할 수 있는 건강으로 은퇴하지 않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기술인으로, 실증의 경험을 후배 기술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간의 약력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대학 졸업 후 국제종합건설과 플랜트전문건설사인 대우그룹의 ㈜신한에서 그룹의 해체가 이루어진 2001년 까지 기전사업본부 이사로 재직하였다. 현대그룹 계열인 동서산업건설의 대표,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인 ㈜한국종합엔지니어링과 ㈜이산의 부사장을 거처, 현재 ㈜화신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장/CTO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정춘병 박사의 사회활동의 다양한 면모 ]

뿐만이 아니라, 1998년부터 14년 넘게 명지전문대학 전기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쳐왔고, 관련 협‧단체와 한양대학교, 세종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등에서 강사로, 노동부 산업현장교수, 한국장학재단 사회리더 대학생 맨토 등으로 활동하였지요.



저서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전기설비(배전설비)(전원설비), 태양광 발전시스템 설계와 시공기술, 신재생에너지발전시스템공학, 신재생에너지발전시스템(태양광)공학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연구논문이 있습니다.


[ 항상 책을 가까이 한다는 정춘병 박사의 출판 서적 들 ]

■ 종합건설사 24년, 종합엔지니어링 분야 18년 등 전기산업분야 외길 40년을 쉴새없이 달리며, 후학 양성과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앞서가는 기술인의 한사람으로 국가기술발전을 걱정하는 산 지식인입니다. 유소년시절 서울에 입성하는 계기가 있나요?.

▶ 저의 고향 경기도 포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된다’는 부모님 말씀으로, 서울에 있는 대원고등학교의 전신 수송전기공업고등학교를 1966년에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여 박사가 되기까지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중‧고교시절 인격형성시기의 모습 ]

■ 특별히 전기공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라도 있나요?
▶ 어린 시절의 꿈은 식물학자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였으나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로 꿈을 접고 확실한 직업인 전기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뒤돌아 생각하니 아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조언해주신 분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건설 산업현장에 힘들었던 사례를 소개해 주시죠
▶ 가장 힘들었던 일은 개인 사업을 접고, 사장이라는 직종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님을 터득하고, 국제종합건설이라는 회사에 대학 입학동기에게 면접을 보고 입사해, 신입사원 시절에 처음 부임했던 전주 인후동 주택공사아파트 현장이었죠,

저층아파트 23개 동과 관리사무소 그리고 상하수도와 부속설비에 전기공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할 때 기초공사가 끝나고, 각 동의 골조공사가 시작 된 시점이었죠.

선임자 P대리와 함께 근무한지 한 달이 좀 지난 때, 그가 사직서를 내고 떠나자, 본사에서 저를 배려한다며, 너보다 상급을 보낼까, 하급자를 보낼까 하고 저에게 의사를 물어왔는데, 위도 아래도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충원을 받지 않았어요.

주택공사 전기담당 조계장이 무슨 배짱으로 어찌 할 것이냐고 걱정하며 만류하였으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공사를 마무리 하도록 도와달라고 사정하여 승낙을 받아 혼자 뛰며 지낸 시절이었습니다.


[ 전주 인후동 주택공사 아파트현장 시절 ]

출근하여 각 동을 돌고나면 오후가 되지요. 새벽부터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매달 기성신청서류 작성으로 밤을 새야 됐었습니다.

전기공사 내역서가 공사금액 대비 엄청 많은 것과 빨리 오는 한 달을 탓하며, 제출용 6부, 보관용 1부, 합계 7부를 한 번에 종이 7매와 먹지 4매에 볼펜으로 힘껏 수기로 작성해야 했었던 시절이에요.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볼펜만 보면 손가락이 아픈 것 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기도 하답니다.

계산기도, 복사기도, 엑셀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에 일이라,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이 당연하고,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던 때입니다. 그래도 그 때 많은 도움주시고, 또 받은 인연으로 은퇴한 조본부장과는 가끔 만나 옛이야기 합니다.

두 번째 경험은 사우디아라비아 콰티프현장의 하수처리시설 P/J이었습니다. 해외 경험도 없이 홀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어렵게 공사기간 내에 준공을 받아내느냐고 글로 쓸 수 없는 많은 경험과 고생을 겪었습니다.


[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콰티프현장 근무 시절 ]

이 때 느낀 것 중에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공사 규모를 돈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현장에 담당 직원으로 토목 50여 명, 행정 5명, 건축 1명, 기계 1명, 전기 1명으로 구성하여, 콰티프 시내의 모든 하수관거와 하수처리장설비를 완성하는 Project로 건설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술자 배치의 모순을 크게 경험하였습니다.

하여 고생은 많았으나 그래도 경험한 홀로서기 연습으로 모든 일을 홀로 해결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으며,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 현업에서 보람을 느낀 일에 관해 한 말씀 부탁할까요
▶ 예술작품이 제한된 장소나 특정인에게만 보여 질 수밖에 없는 배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건축물은 오픈된 장소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며 공유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타적인 공용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설이란, 제작 행위에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하여 융합된 하나의 작품으로 창조해낸다는 자부심도 느끼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편리성을 제공한다는 것에서 항상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한국 기술계에 기여한 일이 어떤 것인가요?
▶ 전기설비분야설계 ‧ 시공 ‧ 신기술개발 등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중 하나를 말씀드리면,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 회장 당시 구현한 BIM(빌딩 정보 모델) 시스템은 건축물 3차원 설계기법으로 국내 설계 기술 발전과 선진화에 발돋움하는 발판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정박사는 이 시스템 구현을 위해 라이브러리(Library) 개발 및 보급을 주도했다. 90년대만 해도 설계 단계는 모두 2D 캐드에서 구현되었기 때문에, 이를 3D 입체설계로 전환시켜 가상 세계에서 건축물을 미리 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건축 업계는 고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건축물이 완공되기 전 다양한 문제를 예측, 대비할 수 있도록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었다. 이런 중대한 발전을 이룬 공적으로 정부는 지난 2014년에는 기술 분야 최고의 명예인 ‘과학기술훈장’을 받기도 했다한다.

■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 과거에 ‘미래는 경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사회통념 이였다면, 현재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대격변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앞당긴 자동화시대 즉, 인간은 AI sapiens-인조인간-와 공생 준비를 해야되요. 통신의 혁명으로 삶의 질과 풍습이 바뀌고, 에너지와 식량이 무기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하여, 우리 기술인은 각자의 전문분야를 연구 발전시켜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됩니다.

많은 변화를 경험 할 것이라 판단됩니다만 너무 방대하고 많은 내용이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별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이며, 가진 것은 사람뿐입니다. 제가 한창 현장에서 열정을 불태우던 때는 대한민국이 경제선진국을 목표로 국내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와 건설이 대규모로 일던 시기였습니다. 70년대는 경제개발이 한창인 시기였지요. 그때 기술사들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직접 오찬을 나누며 의견을 나누고 건의를 할 정도로 대우를 받기도 했고 그만큼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풍부한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보다, 학문적 공부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더 우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과학기술 현업에서는 실무이론과 축적된 기술이 융합된 노하우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학문(박사), 기술(기술사), 기능(기능장)을 구분 못하고, 축적된 실증의 경험의 보유자인 기술사를 경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못내 아쉽습니다. 미래의 개척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무시하는 풍토,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봅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 기술자가 앞으로 어떤 전문 영역 하나로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융‧복합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자는 기술자로 보기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요. 소위 탤런트(Talent)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이해 정도는 해야 된다고 봐요. 세상이 팍팍해지기도 했고, 삶의 여유가 없다지만, 공학하는 사람들이 인문학과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면 해요.

물론 자기 기술은 기본이고 여러 분야의 학문을 아우르는 기술자가 진정한 기술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조건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통일주체대의원 판문점 행사에 참석 ]

■ 장남(長男)의 책무 유기란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저의 아버지는 우리집 가훈을 ‘다른 사람에게 해(害)를 주지말자’라고 정하고, 본인 스스로는 최고의 거부 의사가 ‘글쎄...’라는 말 한마디일 뿐, 평생 남과 다툼 한 번 없이 청렴결백하게 사시며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시다 95세에 돌아가셨지요.

아버지와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짐이라며 항상 보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담고 고향집에 혼자 계시는 98세의 어머니께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나쁜 아들이죠. 후에 속죄의 글을 쓰려고 정한 책제목이 ‘아빠, 나쁜 놈 왔어요. 아니야, 좋은 사람이야.’입니다.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바쁘다는 핑계로 낮에만 잠깐 들러 뵙는 불효자였어요. 하루는 죄송한 마음에 ‘아빠, 나쁜 놈 왔어요.’ 라 인사하니 아버지께서 미소 지으며, ‘아니야, 좋은 사람이야.’ 하고 응답해 주셨던 가슴 저미는 기억에서 지어진 제목입니다. 뒤늦게나마 글로 사죄드리려고 제목을 정하고 돌아가신지 4년이 지난 지금도 바쁘다는 구실로 글은 아직도 시작도 못하고 있는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누구나 작은 에너지로 많은 일의 성과를 얻으려는 욕심과,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이 있을 텐데, 나는 지금 현실에 만족합니다.

앞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산지식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고 싶어요. 후배들이 겪을 시행착오 한 번을 줄일 수 있다면 더 좋은 기술이 더 빨리 완성되지 않겠습니까? 손자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와 내 후손이 조금 더 풍요롭고 편의성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생각 인 듯해요.

또 이제는 단순 로봇이 아닌 인조인간 협업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계언어를 잘 쓸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기본적으로 많이 연장됐으니 그들과 함께함에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죠. 그러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여 나의 세계도 넓히고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 은퇴 후 돌아갈 고향집이 마련된 아늑한 모습 ]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이야기하며, 이제 좀 쉬어라 하는데 100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80세가 되는 2027년 까지만 활발히 사회활동하며 봉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나의 주변을 살피고, 나의 시간을 즐기며, 나의 동반자와 여생을 보낼 계획입니다.



사회적으로 정년이 지났음에도 변함없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공동체에 남다른 기여를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답변이었다. 정 박사는 학문적 이론과 현장에서의 실제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평소의 가치관으로 자신 완성에도 게을리 하지 않했다. 하지만 작금의 달라진 풍토에 정춘병 박사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문적 성취자이며 산업현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기술사이다. 이 둘을 겸비한 기술사들은 많지 않다. 자연히 기술사와 관련한 공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가 의견을 개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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