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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0년06월09일 20시40분 ]



             
문 장수 수필가                    [ 페루 리마에서 멕시코시티를 거처 쿠바까지 ]
기술사, 공학박사

미국 은퇴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순위 1위가 쿠바 아바나라고 한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쿠바는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쿠바의 옛 모습과 문화를 그대로 느껴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의 여행이 아닐까 생각하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페루리마를 출발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오전에 출발한 여객기는 콘도르처럼 날아 쿠바의 영공에 진입한다. 처음 가는 하늘길이고 땅이기에 흥분과 경이로운 기대감에 졸음도 달아난다. 구름 아래 펼쳐지는 쿠바의 널 푸른 대지의 모습을 연신 핸드폰에 저장하게 만든다. 3시간여를 구름 위를 가볍게 날아서 오후 14시경 아바나에 도착했다.


[ 기내어서 본 쿠바의 널따란 평야지대 ]

카리브 해 군도 가운데 가장 큰 단일 섬으로 악어 모양을 한 쿠바는 면적이 남한 면적보다 다소 큰 편이다. 이곳은 산이 30%, 평야가 70%라 하니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잘 구획된 푸른 들판은 지평선의 평야가 펼쳐져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공항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나 아직도 구소련의 영향인지 어두컴컴한 휘장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 한 공산주의 사회를 맛보는 느낌이다. 이곳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입국 절차에 단체 여행자보험증서를 제시해야만 한다.

쿠바의 수도는 스페인어로 아바나(hAvana)로 불리며, 영어로 하바나(Havana)로 불린다. 카리브 해안에 자리 잡은 미국의 앞마당 휴양지로 유명하고, 쿠바인구 1,135만 명 중 아바나는 210만 명이다.

아바나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25℃로서 연교차가 6℃ 내외로 비교적 쾌적한 아열대 기후이다. 연간 강수량은 1224mm로 5월부터 11월은 습도가 높으나 태풍 경로의 통로라서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 4성급 국영호텔 모습과 현지 가이드 ]

숙소는 공항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쿠바 정부가 운영하는 호텔이다. 50대 후반의 현지 가이드는 한국어를 70% 정도 구사하는데 그는 일찍이 북한에 유학한 바 있고, 서울 연세어학원 어학연수를 한 일도 있다.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몇 가지 주의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여행 시 통상적으로 하는 주의사항이지만, 쿠바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고 북한 대사관만 있어서 여권 등 무엇이든 분실하면 찾기 어렵고 수습에 어려움이 많다 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각자도생이다.

호텔 앞에 대기한 관광버스에 올라 시가지를 두루 섭렵하게 된다. 1950년대에 만들었다는 해저 터널 길이는 약 1km 정도로 시가지로 가는 길목이다.

시가(市街)는 좁은 해협 서쪽의 반도부를 차지하는 구시가와 그 서쪽에 새로 건설된 신시가로 구분된다. 시가지는 눈부신 카리브 해의 중심에 자리 잡은 “혁명의 도시”라는 사회주의적인 독특한 이미지를 지닌 듯하다.


[ 아바나의 신시가지로 해외 공관들이 입주하고 있는 지역 ]

쿠바 항구는 스페인의 교두보로 모든 물자, 군사의 요충지로 남미 침공의 전초기지였다. 아바나는 1519년에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 나갔고, 아바나는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 지배 등의 중심 기지로서 무역의 거점 중계지로 발전했다. 그래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의 해적 공격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푼타 요새, 모로 요새 등 여러 요새가 만들어지고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스페인군이 1740년에 요새 성벽을 완성했지만, 1762년 영국군에 항복하여 자유무역항이 되면서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가 아바나로 끌려왔다. 이로 인해 다 민족 사회가 형성되었고, 노동력의 확보가 쉬워지면서 쿠바의 설탕 산업이 확대되어 쿠바는 근대적 설탕 제조업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곳 쿠바의 원주민은 10만 명 정도였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 건강하고 튼튼한 여자들만 남기고 약한 남자들을 제거해가는 정책을 펴면서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건장한 체격의 흑인 노예와 강제 혼인시켜 노동력을 확보했다 한다.

[ 말레콘 방파제 쉼터, 오래된 건물, 그리고 모로 요새 ]

아바나를 둘러친 8km가량의 긴 방파제를 말레콘(Malecon)이라 하는데 도시 풍경과 방파제가 어우러져 여행자에게 말레꼰은 아바나의 대표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바나의 북쪽 바닷가의 파도가 부딪히는 방파제 둑에서 낚시하거나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 아바나의 역사를 담고있는 말레콘 방파제와 모로 요새의 모습 ]

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에 말레콘 방파제가 등장할 정도로 아바나 시민의 가장 가까운 벗이다. 노을 지는 밤이면 연인들이, 아이들끼리, 노부부가 방파제 위를 걸으며, 걸터 앉아 아바나의 풍경을 만드는 소품들이다.

쿠바는 1959년의 혁명 이후 소련의 대쿠바 무역 특혜와 지원을 받아 미국의 경제 봉쇄를 견뎌왔다. 가진 거라고는 사탕수수와 담배뿐인 가난한 나라가 어떤 고행의 길을 걸어왔을지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아바나의 시민들은 버리려도 버릴 게 없고, 사려 해도 살 것이 없는 신세를 수십 년간 겪어왔다. 빈털터리의 시민들은 이 방파제 말레꼰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쿠바인들은 50년을 견디어 왔다는 자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무대응과 관망하는 심정이어서 별반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길 건너편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낡은 고층건물들이 말없이 줄지어 있다.


[ 1950년대 미국자본에 의해 건설된 신시가지 지역 건물들 ]

아바나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와 격동의 시대 혁명과 전쟁을 겪었던 굴곡진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와 오래된 요새들은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18세기에 건설된 아바나만의 서쪽 구시가지는 하얀 건물이 많은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거리 풍경으로 지금도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인 유물들이 남아 있다.

구시가지의 서쪽에 있는 광대한 신도시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쿠바의 자본가와 바티스타 정권 정부 요원의 고급 주택지로 개발된 지역으로, 넓은 도로와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나란히 서 있다.


[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건물들 ]

20세기 초에서 1958년까지, 이 도시는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카리브 최고의 환락 도시였다. 남미 최대의 중산층이 있던 이 도시는 호텔과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이 번성했다. 자동차 경주와 뮤지컬 쇼가 밤마다 화려하게 펼쳐지던 도시이다. 미국의 앞마당이었던 카리브 해의 도시를 찾은 미국인만 30만 명이 넘었다 한다.

저녁 식사는 개인이 운영하는 현지식인 피글링이다. 쿠바의 특성상 개인영업이 조금씩 늘고 있는 가운데 성행하는 곳으로 가이드가 추천한 곳이다. 돼지 한 마리를 바비큐해서 30여 명의 일행에게 숙달된 손놀림으로 접시에 1인분씩 골고루 배분한다. 여기에 전통주와 병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어찌 한잔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분위기를 돋우는 쿠바의 민요라는 “관타나메라”를 생음악으로 서비스하니 흥겨워진다.
 

[현지 개인 경영 식당 AJiaco ]

쿠바의 민요 “관타나메라”는 [관타나모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19세기 말 쿠바 문인이자 혁명가, 사상가로 독립의 아버지라 부르는 호세 마르티가 죽기 전에 쓴 [관타나메라]라는 시(詩)로부터 연유된다. 호세 마르티의 명성으로 관타나메라는 자연스레 쿠바의 민요로 자리 잡았다. 후렴으로 'Guantanamera~'가 4번 반복되고 호세 마르티의 4개의 다른 시구(詩句)에서 일부분의 가사를 붙여 작곡된 경쾌하며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진다.

저녁 식사도 현지 식으로 마치고 나서 야간에 거행되는 포격식을 보러 요새 산카를로스성으로 이동한다. 성안에 들어서자 전통상품을 길거리에 내어놓고 판매하는 상인들이 반기며 환영한다.


[ 요새 안의 입구 양쪽에 늘어선 기념품 판매 상인들과 내부성벽 모습 ]

아바나 동쪽에 있는 아바나만(灣) 입구의 카바나(Cabana)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지은 요새 중에서 가장 큰 요새로 아바나시(市)를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774년 완공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적지로 지정되었으며 모로 요새와는 1km 떨어져 있다.


[ 포격식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세계의 여행객들 ]

중앙 건물은 스페인 왕관 모양이며 동쪽에 높은 성벽을 만들어 수로와 마주한다. 아바나 구시가지는 물론, 항구 입구를 1.6km가량 조망할 수 있는 입지가 좋은 요새의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성의 길이는 약 14km로 미로(迷路) 형식의 계단과 지하 감옥이 있는 거대한 군사 시설이다.
 

[ 당시 포격식과 이곳 성을 지키기 위한 포대와 포탄의 모습 ]
 
현재는 박물관을 포함한 역사적인 군사공원으로 중요한 옛 무기가 소장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든 대포알이 120개 있고 여러 가지 종류의 곡사포도 갖추어져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곡식창고와 저수지가 있어 외부로부터 음식물을 공급받지 않고 1년 이상을 버틸 수 있도록 축성되었다.

해적의 출몰이 많아 성곽 주위에 성호(城濠)인 깊은 해자(垓字)를 만들었고, 육중한 교각의 성문을 닫아 외부인 출입을 막는 통행 금지시간을 미리 알리기 위해 매일 밤 9시에 대포를 쏘았다 한다.


[ 아바나의 야경과 요새 산카를로스성에서 포격식 장면 ]

포격식은 아바나 시민들이 전통을 보존하며, 관광 상품화 하는 포격 행사이다. 전통복장을 한 대원들이 악대와 함께 줄지어 입장하고 포격식을 거행한다. 한 방의 포(砲)를 쏘는 것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포격식을 기다리며 저녁노을 속에 하나 둘 켜지는 아바나 시가지의 불빛은 카리브 해의 물속으로 점점 잠기며 반짝이는 야경에 탄성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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