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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년10월24일 16시49분 ]

[한국시민뉴스] 문장수 기자 =

 

남미여행은 한 번쯤은 가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하나투어(인솔자 홍재현)에서 특별히 기획한 멕시코-페루-쿠바를 잇는 10일간의 코스가 매력적이어서 단단한 마음으로 결행을 하게 되었다.

 

멕시코시티 북쪽 테페약 언덕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가톨릭교회 성지 순례의 중심인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가 있다. 이곳은 1895년에 로마교황이 과달루페 성모를 인정하였고,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받는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세계 3대 성모 발현은 포르투갈의 파티마,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이다.

 

[ 멕시코시티 북쪽 라빌라데 과달루페(La Villa de Guadalupe) 성당 모습 ]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바실리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크며 교황이 특별한 전례 의식을 거행하는 성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후안 디에고(Juan Diego1474~1548)는 가난한 인디언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53112월 어느 날 테페약(Tepeya)의 작은 언덕을 지나가는데 디에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있어 주변을 살펴보니, 빛이 나는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후안, 어디로 가느냐? 나는 이곳에 교회를 짓기 원해서 나타났다"라고 하였다.

 

이에 후안 디에고는 곧바로 주교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이를 반신반의했던 주교는 디에고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증표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디에고의 숙부가 임종 직전이 되었고 디에고는 종부성사(終傅聖事)를 거행해 줄 사제를 찾아 나섰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디에고에게 다시 나타나, “너의 숙부는 이미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디에고에게 언덕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꽃을 모으라고 명했고, 때는 겨울이었음에도 디에고는 장미를 비롯한 꽃들을 주워 모아 주교에게 가지고 갔다.

 

그가 꽃을 건네려고 외투를 펼치자 장미꽃들이 떨어지면서 그곳에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또렷하게 나타났다. 이에 주교도 디에고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됨에 따라 1531년에서 1709년까지 지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의 발현 이후 멕시코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인디언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는 멕시코와 국민에게 국가적 정체성을 표상이 되었다.

 

 

두 번째로 현신했던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은 과달루페의 동정녀 마리아(Our Lady of Guadalupe)” 성화가 성당의 중앙에 있으며, 이 이콘(ikon:)은 멕시코의 수호성인으로 멕시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후안 디에고는 사후 과달루페성당에 묻혔고, 디에고의 외투는 성물로 지정되어 성당에 보관되었다. 디에고는 2002년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로마 교황청은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로 정식 공표하였다.

 

 

16세기에 건축된 원래의 성당은 멕시코의 지반이 연약하여 침하로 붕괴할 위험에 처해 1974~1976년 구성당 바로 옆에 원형으로 성당을 새로 건립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곳은 로마의 바티칸 바실리카 다음으로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는 순례지로, 새로 지어진 바실리카의 넓이는 1만 명의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원형으로 체육관 형태와 같은 성당 모습이다. 특히 이곳은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10대의 미사를 봉헌 집전한다.

 

 

<과달루페의 동정녀 마리아> 원화 이콘은 1974~1976년 사이에 대성당 과달루페의 바실리카를 새롭게 건립한 원형의 성당 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성모님의 신성상 원본은 460년 동안 어떻게 무엇으로 그렸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유럽의 과학자가 1918년에 분석한 결과 성모님의 이콘은 3가지 지구상 존재하지 않은 물질의 재료로 되어있음이 밝혀지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본당 뒷족의 통로 홀의 벽면에는 당시의 성모님 이콘을 보기 위한 많은 순례객을 위해 입구와 출구를 수평식 무뮝 통로(U 자 형태)로 해서 순환 이동하면서 혼잡을 줄이고 있다. 이동 중에 연방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어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객으로 매우 북적북적하다.

 

과달루페성당은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장소로 1212일 동정녀 마리아 축일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으로 오는 고행을 하기도 한다.

 

 

특히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 이다르고 신부가 이 성모의 이콘을 군기에 사용한 이후, 멕시코 국내의 정정과 사조의 변전을 넘어서 지금도 내셔널리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당 좌측의 나지막 한 동산에는 성모 님의 모습을 담은 이콘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참배객이 이곳을 찾는다. 축일인 1212일은 많게는 천만 명의 순례객이 이곳 광장으로 모인다고 한다.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에 대한 식민통치 역시 이처럼 무력과 종교를 병행하는 방법을 취했다. 또한, 교황으로부터 신대륙의 주교를 위시해서 여러 직책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신 국왕은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킬 의무를 지게 되었다.

 

스페인의 왕실과 가톨릭교회는 콜럼버스의 2차 항해(1493) 때부터 선교사들을 동행시켰고, 1511년에는 2명의 주교가 처음으로 신대륙에 파견되었다.

 

 

원주민들은 아프거나 괴로울 때 하느님의 은총이나 위로를 받기 위해 교회로 갔고, 그곳에서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의 원주민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이로써 완전한 가톨릭 신자가 되지 못한 연유로 원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뿌리내리기 위해 원주민의 전통 신앙 요소들을 이용해서 가톨릭의 토착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리하여 멕시코에서는 1570년에 이미 70개의 수도원이 건립되었다. 신자가 증가함에 따라 교회조직은 16세기 말에 5개의 대교구와 27개의 일반 교구로, 17세기 말에 10개의 대교구 38개의 일반 교구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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