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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년10월04일 13시26분 ]
[한국시민뉴스] 문장수 기자 =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멕시코시티까지 14시간여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비행기(에어멕시코)가 고맙기만 하다. 이번 남미여행은 한번쯤은 가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하나투어(인솔자 홍재현)에서 특별히 기획한 멕시코-페루-쿠바를 잇는 10일간의 코스가 매력적이어서 단단한 마음으로 결행을 하게 되었다. 워낙 먼 거리라는 부담과 치안과 편의시설이 열악하다는 소문으로 미뤄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멕시코 공항에는 낮 시간에 도착하여 숨 고를 여유 없이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인 곳을 찾게 된다. 멕시코시티는 2,000만 명이 사는 해발 2240m의 고원도시로 북위 19.24도의 열대지역에 속한다. 고원의 경작지와 목장, 계곡과 삼림에 둘러싸여 연평균 기온은 15.1℃ 정도로 선선하다.


[ 테오티우아칸의 해(태양)의 피라미드의 웅장한 모습에 압도 ]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신들이 창조한 도시”라는 테오티우아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고대 유적지이다. 이곳을 포함해 고대 유적과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그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멕시코시티 역사지구”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멕시코는 UNESCO 세계유산으로 32개가 등재되었다.

멕시코에는 몇 개의 고도로 발달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영향이 강했던 테오티우아칸 문화는 7세기경에 갑자기 사라지면서 톨텍문화가 12세기에 수도 투라에서 멕시코 중앙고원의 텍스코코 호반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도시국가가 성립되었다.

과연 명성에 걸맞은 “미스테리로 가득찬 거대한 고대 도시”에는 “신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죽은 자의 거리, 상징적인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작은 피라미드”들이 늘어서서 세계 도처에서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있다.

테오티우아칸은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기원전 2세기경부터 도시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이곳의 특징은 먼저 방대한 규모이다. 지금의 주요 건축물과 관개 시설, 도로 등은 기원후 1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만 할 수 있다.

거대한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이 7세기 때 갑자기 세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려 폐허가 되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기이다. 이러한 유적지가 언제 축조되었고, 어떻게 폐허가 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공통적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살던 고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테오티우아칸은 내부분열이나 북방민족의 침략에 의해 사라졌다는 추측들만 무성할 뿐 그 거대했던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정확한 기록들이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적지의 건축 양식과 재료, 기법, 그림, 조각 등으로 연대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라 한다. 이러한 대표적 유적지가 테오티우아칸, 마추픽추, 쿠스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 태양의 피라미드 중간 높이의 테라스에서 본 테오티우아칸 유적지 모습 ]

다만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불이 나서 파괴되었다는 것이 유일하다고 하나 원인도 여러 가지 추측만 있고 근거가 불확실한 설(說) 뿐이다. 최근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약 50여 년간 가뭄이 지속되어 이 도시를 떠났다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 태양의 피라미드 계단 정면에 있는 작은 피라미드의 신전 유적지 모습 ]

거대한 건축물 외에도 독특한 조각과 벽화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으로 남아있고,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의 10% 정도만 발굴한 상태인데 그 면적이 여의도의 4배에 달한다고 한다.

테오티우아칸은 7백여 년 동안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당시 멕시코시티와 중앙 고원 지역을 지배하던 아스텍 사람들은 지배자의 무덤을 찾던 중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한 것이 14세기였다.
 
거대한 유적지를 발견한 아스텍 사람들은 이곳을 “신의 도시”라는 의미의 “테오티우아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 거대한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일부분으로 발굴(10%)을 계속중 임 ]

테오티우아칸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기 전까지 약 200년 동안 아스텍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었던 유적지를 발견한 스페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매우 놀랬었다 한다.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테오티우아칸을 방치하였고, 다시 폐허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곳 유적지 발굴은 1864년 “라몬 알마라스”라는 고고학자가 수집한 기초 자료와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한 사람은 "데지레 샤르네와 레오폴도 바트레스"였다.

1884년 발굴을 시작한 두 사람은 과거에 제사 의식을 올렸던 곳을 발굴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멕시코 독립후 19세기 중반, 다시 발굴을 시작하면서 테오티우아칸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치밀하게 조사하지 않고 서둘러 멕시코 독립 100주년에 맞춰 복원하는 바람에 소중한 유적지를 파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다.
 

[ 달의 피라미드 전면으로 난 45m~100m 도로 좌측에 있는 작은 피라미드 ]

돌과 석회로 만든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죽은 자의 거리 동쪽에 세워져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로 세계 3번째 규모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슷해 보인다.

정사각형의 돌로 쌓은 “태양의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20m, 높이가 65m, 체적은 100만㎥이며, 두입한 돌과 흙의 무게가 500만 톤에 달한다. 4단계로 쌓아올린 이 피라미드의 정면에는 252개의 계단이 정상까지 나 있다. 이 피라미드를 축조하는 데 하루 3,000명씩 동원해도 3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된다.


 
테오티우아칸은 건설 초기부터 완벽한 구상 하에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였으며, 종교적인 상징성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가 처음 축조되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높은 74m로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약 10m 높이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보기에도 웅장한 태양의 피라미드는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7배 규모라 한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이집트 피라미드는 바닥에서 정상까지 층 구분 없이 가파르게 각도를 이루고 있지만 태양의 피라미드는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해의 피라미드에 있는 테라스에서의 주변 경관 ]

그리고 이집트 피라미드는 계단이 없지만 태양의 피라미드는 가운데에 계단이 있고 층을 구분하는 중간 지점에는 폭이 2~3m인 테라스가 있다. 또한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해 다양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음은 이집트 피라미드는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돌만 사용해서 지었지만 태양의 피라미드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돌을 썼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회반죽을 사용해서 지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신기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정상에는 기(氣)를 받는 점(포인트)가 있다. 한손은 하늘을 향해 쭉 펴고 한 손은 바닥의 점에 찍어 하늘로부터 기를 받는다 한다.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넓은 길이 계획의 중심에 있다. 이 길 좌우로 많은 석조 구조물, 피라미드와 사원, 광장, 주택 등이 건설되었고 그 끝에 사람의 심장과 피를 바쳤던 달의 피라미드가 우뚝 서 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바닥 한 변 길이 146m, 높이 46m의 둥근 모양의 4층 구조물로 해의 피라미드보다 작지만, 100만 톤 규모의 돌과 흙이 사용 되었다. 피라미드의 계단 위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가 이루어진 곳으로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16세기 스페인이 점령한 뒤부터 의식이 사라졌다.

태양과 달, 두 피라미드 사이에 길이 5.5km, 너비 45m의 대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이 길은 인신공희의 의전(儀典) 길로서 “죽은 자의 거리”라고 했다. 한편 이 길을 “죽은 자의 거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스텍 사람들이 길 양쪽에 세워진 건물들을 무덤이라고 잘못 생각해 “믹사오틀리”라는 아스텍 말로 “죽은 자의 거리”란 뜻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다.

테오티우아칸 유적지를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장소는 북쪽 끝에 자리한 달의 피라미드 정상이라 한다. 달의 피라미드 정상에 서서보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중앙 고원에 있는 거대한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해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와 주변 광장의 모습 ]
 
달의 피라미드 앞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5.5Km의 죽은 자의 거리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여러 건축물들이 있다. 좌측과 우측에 세워진 3~5층의 작은 피라미드들은 신에게 의식을 올렸던 신전이 11곳이나 있다.



[ 달의 피라미드 광장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신전들 ]

이 신전들은 어떤 신을 모신 곳이며, 무슨 의전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대인들이 태양과 달, 농업(옥수수)과 관계가 깊은 물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을 했던 곳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 케찰파팔로 궁전과 관련된 달의 피라미드 우측에 있는 건축물의 모습 ]

기둥과 지붕이 있는 여러 건축물 중 인상적인 장소로는 케찰파팔로틀 궁전과 재규어 신전, 신화 동물들의 신전을 꼽을 수 있다.


[ 케찰파팔로 건축물의 기둥과 입구의 구조, 외벽의 석조 축조 모습 ]

케찰파팔로틀 궁전은 사각 기둥이 받치고 있는 통로와 여러 개의 작은 방과 안뜰로 이루어져 있고, 신화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새 케찰파팔로틀을 비롯하여 물을 상징하는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 케찰파팔로 건축물의 내부에 채색벽화와 조각들의 모습 ]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원래 케찰파팔로틀 궁전에는 채색 벽화와 조각이 휠씬 많았다고 하는데 가장 지위가 높은 성직자와 제사장이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죽은 자의 거리 남쪽 끝에는 물을 끌어들였던 관개 수로와 신에게 의식을 올렸던 케찰코아틀 신전, 대광장이 있다.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장인과 농부, 상인 들이 살았던 주거지와 농경지가 있다.


[ 케찰파팔로 건축물의 내부에 채색벽화와 돌문양의 모습 ]

테오티우아칸이 사라지기 전까지 기원전 9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 기원전 600~150년에는 소촌락이 생겼고, 당시 8k㎡의 면적에 2만 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기원후 100~150년에 이르러서는 면적 20k㎡, 인구 6~8만 명을 거느린 분지 내 최대의 도시로 급성장하였다.

테오티우아칸의 전성기는 기원후 200~550년으로, 도시의 면적은 23.5k㎡, 인구는 12만 5천~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아테네 인구와 비슷한 정도였으며, 면적은 로마보다 넓었다 한다.

테오티우아칸이 이토록 거대한 도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던 돌 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라한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청동이나 철로 무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고, 모든 무기를 만드는 돌은 표면이 반짝이는 “흑요석”으로 돌칼, 돌화살촉, 돌도끼 등 무기제조 공방이 약 400곳이나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 문화의 모습은 정복된 후 건너온 가톨릭교 성직자들 중의 유지와 그 밖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아즈텍 시대에 텍스코코 등에서 만들어진 인디오의 그림 몇 가지가 소멸되지 않았다. 또한 스페인 300년의 식민지시대에 복제(複製)된 그림도 상당히 있어 아즈텍 문화나 그 왕조의 역사는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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