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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년04월29일 14시10분 ]



남 제 성 원장

정릉 성모 외과 의원

 

 

전철 북한산보국문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대로변을 따라 5분 정도 직진하면 우측에 정릉성모외과 정형외과(02-914-0743)가 나온다.

 

남 원장은 건장한 체격의 경륜이 높은 외과 원장으로서의 남다른 포스가 넘치는 인상이다. 광주태생으로 동중과 광주고(18)를 졸업 조선대에서서 외과 의사를 마치고, 군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는 19853월 정릉에 텃자리를 잡고 정릉성모외과를 개원한지 34년이니 통산 40년을 의료에 종사해 온 정릉의 터줏대감이다.

[ 정릉성모외과의원 정문 입구에서 남 원장의 모습]

 

군에서 국군수도통합병원 일반외과의사의 전공의를 거쳐 6년간을 복무하여 57후송병원에서 소령으로 전역 후 정릉에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른 아침인데 병원에 들어서자 벌써 내원환자가 대기 중이다. 1층은 사무실 겸 대기실이며, 진료실과 주사실 등이 있다.

 

[ 1층의 대기실 및 접수 등 원무 행정과 남 원장의 진료실 전경 ]

 

지하 1층은 X-ray 촬영실과 물리치료실이 있다. 2층은 입원실이 있는데 요즘은 입원환자가 줄어들어 정리중이라 한다.

[ X-ray 촬영실과 물리치료실의 모습 ]

 

각종 모임이 주중에 있게 되는데 모임들이 대개는 오후에 있다 보니 수술 등이 있는 경우 거의 참석할 수 없어 동창 친구들과의 모임에 빠지게 되었다 한다.

 

포경수술을 하루 30여 명씩을 하던 때가 피크였다고 한다. 하루 내원하는 환자는 많은 날이 월요일인데 전에는 110~120명 정도이었는데 요즘은 그보다는 20%정도 줄어든 90명 정도라 한다. 화요일부터는 70명 선이란다.

 

[ 진료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남 제성 원장의 모습 ]

 
 

남원장의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데, 병원 이름에서처럼 성모님의 은총인 듯하다. 병원 내부에는 성모병원답게 성모상과 십자가 고상이 있어 그의 독실한 신앙심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곁에 모시고 감사와 봉사의 정신에서 힘이 생기는 원천이리라 믿어진다.

 

요즘은 통증클리닉을 하는데 주로 오후에 15명 정도 하게 되면 체력이 딸려 그로기상태란다. 대상포진, 오십견, 테니스엘보 등 각종 통증이 주요 대상이란다.

 

정릉이 제2의 고향이라는 이곳도 지금은 병원이 많이 늘어나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14개 정도가 정릉 3, 4동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남 원장은 이곳 동네 이웃을 보살피듯 진료하는 일이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단다. 이 대목에서 40년 그의 내공을 엿볼 수 가 있을 것 같다.

 

남 원장은 한 때 정치에 뜻을 둔바 있다. 1991년 당시 평민당으로 서울 시의원에 도전하였으나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여 7개월간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그 사건으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당시 서울시 의원 출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이 가득할 정도로 환자가 많았고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수술 환자도 많았고 40대 초반의 혈기로 술도 많이 먹었기에 건강이 악화되었다 한다.

 

이 무렵 주변의 권유로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면서 가혹할 만큼 혹독하게 몸만들기 훈련을 하여 건강을 되찾게 되었으나 당치 않은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새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시험에 빠진 자신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됨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다.

[ 우리가곡 명태를 즐겨 부르던 시절의 남 원장의 모습 ]

 

남 원장은 가곡 명태를 애창하였고, 동창들과 지인들은 바리톤의 명태를 다시 듣고 싶어들 한다. 

명태의 가사 내용은 남원장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뭔가를 가곡에서 표출하였을 듯하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카아~~~)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도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태 허허헛 명태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남 원장은 1994년 순천향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후 가톨릭의대 외래교수를 역임하였고, 성바오로 병원에서도 활동하며, 성바오로 성당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 전문의 자격, 학위기, 외래 교수 등 활동 ]

 
 

남 원장은 7남매(52)의 둘째로 부친(남영소, 육사 8, 경북의대 졸업, 전남의대교수 역임, 남이비인후과 개원)의 뒤를 이어 의료에 뛰어들었다.

[ 남 원장의 부인, 두 딸과 아들 그리고 외손주(현재 15) 모습]

 

남 원장의 큰 형(남충성 79)과 막냇동생도 의사로 활동 중에 있다. 특히 큰형은 세브란스 이비인후과에서 근무를 하다 뜻한 바 있어 1968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의학공부를 하여 미국 52개주 어디에서든 개업을 할 수 있는 미국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뉴저지 주에서 개업을 한 후 현재도 활동 중이라 한다.

 

이런 연유로 남 원장과 가족들이 큰 형님으로부터 미국에 초청받아 영주권을 갖게 되었다. 동생은 USC방사선 실장, 매형도 미국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LA의사 총무를 역임하고 있다 한다. 매제는 가톨릭의대 순환기내과 학장을 역임하고 있어 남 원장의 집안은 장조카까지 의료계에서 3대를 거쳐 활동하고 있다.

 

남 원장은 슬하에 3남매(12) 모두 출가하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아들은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학구파이다. 두 딸은 외손녀가 둘, 외손자(15)는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부인(장소원)도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 또 미국 시민권을 가진 두 딸과 아들이 미국에 있어 도미계획을 하고 있다는 귀띔이다.

 

그는 휴일이나 주말에는 의사협회에서 실시하는 연수 세미나에 나가 새로운 의료내용을 귀담아 듣고 있다. 한때 열창했던 가곡 명태는 옛 이야기 같다. 기운이 부족하고 자주 하지 못한 연유로 잊어먹을 정도란다.

 

운동은 특별하게 별도로 하지는 않지만 건강을 최소한 유지할 수 있는 기본인 둘레길 단골 고객이다. 그래도 약주는 아직도 소주 1병 정도는 거뜬하다니 건강하다. 다만 환자를 대할 때 거부감이 없도록 항상 마시는 것을 신경 써야 한다고 한다.

 

40여 년 동안 시대가 바뀌고 주변의 상황이 변했지만 남 원장의 희망찬 모습에서 마음 든든해진다. 나아가 정릉 동네 이웃의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보람과 즐거움으로 힘이 솟는 모습이 더욱 자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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