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태 작가의 잡설산책, 7. 대나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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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문득, 곁에 있는 자연에 매혹되어

등록날짜 [ 2024년11월25일 14시09분 ]

[한국시민뉴스] 이명림 기자=

<< 대나무 >>

만일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사실이라면 나는 죽어 대나무가 되고 싶다. 대나무를 볼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지며,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은 언제나 아늑하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비목비초(非木非草)’라고 한다.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는 대목이 바로 비목비초를 이르는 말이다. 대나무를 목재(木材)라 하지 않고 죽재(竹材)라 부르는 것을 보아도, 한자로 대나무‘죽(竹)’이 풀‘초(艸)’를 거꾸로 놓은 모양임을 보아도, 풀인지 나무인지 영 헷갈린다. 사실 나무와 풀의 차이는 뿌리에서 바로 나무형태의 줄기가 뻗어 나오는지, 잎이 우거져 나오는지에 따라 구별한다.

또한, 나이테의 유무에 따라 나이테가 있으면 나무이고 나이테가 없으면 풀로 구분한다. 대나무는 남방의 아열대 기후에 맞는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지방, 담양을 대나무의 주산지이자 본 고장으로 보고 있다. 근래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인지 대전 이북까지도 대나무가 널리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대나무는 여러 상징성을 갖고 있는데 숫자로 표현하기를 ‘3’은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이르고, ‘4’는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매, 난, 국, 죽을 말하고, ‘5’는 오우(五友)라하여 물, 돌, 소나무, 달, 대나무(윤선도)를 상징하고 있다.

대나무는 또한 군자를 상징하며, 남자의 지조와 여자의 절개를 상징한다. 대쪽 같은 사람이라 하여 칼로 대나무를 쪼개면 비뚤어 지지 않고 반듯하게 쪼개지는 것에서 비롯된 상징인 것이다. ‘파죽지세’라는 말도 있다. 쪼개기 위해 ‘한 번 칼을 대면 끝까지 쭉 밀려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고려 말, 이방원으로부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며 정 몽주를 회유했고, 그 정몽주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 토 되어”라는 시조로 응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회유가 통하지 않자 결국 정몽주는 개성의 한 다리 위에서 피살당하고 만다. 이 다리의 이름을 선죽교(善竹橋)라 부른다. 또 경부선 죽전휴게소 근처에 그의 무덤이 있는데 이 동네를 오늘날 죽전(竹田)이라고 부른

다. 아마도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고 자 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전통혼례의 초례상에 송죽(松竹) 같은 절개라며 소나무와 대나무를 장식하는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귀신을 쫒고 평안을 빌고자, 중국에서 많이 하는 폭죽놀이가 있다. 대나무를 태워 마디 속의 빈 공간이 공기의 팽창으로 인해 ‘뻥’하고 터지면서 큰 소리를 내면, 귀신이 그 소리 때문에 놀라 달아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약을 사용하는 지금도 이것을‘폭죽(爆竹)’이라 쓰고 있다. 한자로 ‘대나무 竹’이 폭죽에 들어있는 이유이다.

죽순으로 시작되는 대나무의 일생은 우후죽순이 말하듯 비가 오고나면 ‘순’식간에 자라게 된다. 모든 나무는 성장점이 나무의 끝에 있어 일 년에 그만큼 씩 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대나무는 매 마디에 성장점이 있어 각 마디가 동시에 자라기에 한 마디 자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성체가 되어 60년 만에 꽃을 피우고 죽는다고 한다. 대나무의 열매는 죽실(竹實)이라 하여 상서로운 새인 봉황의 먹이라고 알려져 있다. ‘천리를 날다 날개가 부러지더라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죽실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상징적으로 대나무와 그 열매는 고귀함을 나타내는 의미소이다.

대나무로 만드는 물건은 너무나도 많다. 우리 일상에 쓰이는 생활용품으로 부채, 소쿠리, 빗, 효자손, 수저, 젓가락, 우산대, 각종 그릇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또한, 각종 소리 낼 수 있는 악기류도 상당히 많다. 오죽으로 만들어 애처로운 소리를 내는 단소, 끊길 듯 이어지는 저음의 소리를 가진 대금, 깊은 밤 애간장을 끊어 잠 못 이루게 하는 깊은 울림의 소리를 가진 퉁소, 그리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담아주며 답답한 이발사를 포용한 대나무밭의 소란한 소리까지, 대나무가 내는 소리로는 수도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